직장인 아닌 삶, 그리고 생산성에 대한 고민
요즘 나의 상태를 좋게 말하면 FA(Free Agent), 즉 프리랜서지만,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공식적으로는 적이 없으니 무(無)직인 상태라고 말해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 특히 지난 몇 년간은 대표적인 글로벌 대기업의 디렉터로서 눈 뜨자마자 미국과의 화상회의로 하루를 시작해 많을 때는 하루 11개까지 미팅을 하며 밤 늦게 새벽까지 메일을 확인해야하는 삶을 살았다. 점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게 일상이었기에, 지금의 극적인 변화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의 삶이 정말 '생산적'이었던게 맞을까?
1. 생산성이란 무엇인가?
생산직이 아닌 이상, 시간 투입량에 비례해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를 바쁘게 보내면 생산적인 것 같고, 그렇지 않은 날은 비생산적인 것처럼 느낀다. 과연 하루에도 열 개씩 열리던 미팅들이 얼마나 생산적이었을까? 기업의 실적에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그 결과가 정말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생산성이었을까? 더 많은 제품을 팔고, 더 많이 생산한 결과가 소비자의 불필요한 구매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아닐까?
국내 대기업 두 곳과 글로벌 기업에서 리더를 경험한 후, 사실 더 이상 열망하는 기업이 없어졌다. 어디를 가도 비슷할 것 같아 기대도 크지 않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가장 가고 싶었던 ‘그린피스’에 지원했지만, 거절당했다. 그곳에서는 마케팅이 아니라 정부 정책을 흔들 수 있는 역량이 더 중요했다. 내가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산업계에서 그간 쌓아온 화려한 마케팅 커리어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감흥도 없는 것이었다.
2. 직업이란 무엇인가?
퇴사 후, 강연자로서의 삶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좋은 기회가 이어져 한 달에 한 번씩 무대에 섰고, 몸값도 첫 시급 십만원 대에서 백만원 대까지 단 몇 달만에 빠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제안이 온다고 모든 강연을 다 수락하지는 않았다. 내가 기밀적인 내용을 떳떳이 공개할 수 없는 자리나, 방향성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타이틀이 고정될 위험이 있는 경우는 정중히 거절했다. 강연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다양한 주제를 꾸준히 커버하고 나를 노출시켜야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강연은 반복될수록 자아를 고갈시키고, 스스로 정체될 것 같았기 때문에 전업 강연자는 내게 맞는 길은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공식적인 직함이 없었다고 수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연과 기고로 일부 수익이 발생했지만, 사실은 투자로도 몇 달 치 월급을 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이었다. 하지만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다. 결국 나는 '일'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찾고 기여하고 싶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3. 궁극의 일이란 무엇인가?
아침마다 아이를 재촉해 셔틀버스에 태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만큼 자고, 원하는 아침밥을 챙겨주고, 여유롭게 대화하며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삶. 분명히 이상적이고 귀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을 위해 대학원을 두 개나 나오고, 커리어에 목숨을 걸어온 것이 아니다. 이 삶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는 이런 시간이 중요하지만, 그는 전업주부가 아닌 엄마 밑에서 크는 것도 그의 팔자다. 그리고 나는 내 아이가 평생 열심히 배우고, 전업주부가 아닌 삶을 살기를 바란다.
결국 나는 사회에서 나의 경험과 가치를 적절히 활용할 곳이 있다면 다시 취업을 할 것이다. 그것이 아이와 가정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사회와 타협하는 순간이 오면, 나만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 제조업이라면 환경을 덜 파괴하는 방향으로, 서비스업이라면 고객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무엇을 하든 ‘선한 목적’을 가지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이 고민들은 늘 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어 왔으며, 지금 약간의 시간이 더 주어진 상황에서 그 방향성을 정리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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